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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들의 단결된 힘으로 1주일만에 전면 철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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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마현
그러다가 ƒ‘ƒŽs는 아무런 사전 ‹¦‹c도 없이 2005년도부터 •¬‹à을 ”pŽ~하겠다고 ˆê•û“I으로 ’Ê하였다. 시 당국은 2월 8일부로 ƒ‘ƒŽs‹³ˆçˆÏˆõ‰ï의 이름으로 학부모들에게 통지서를 보냈고 지부는 2월 23일에 이 사실을 알게 되였다.
2월23일아침에 통보를 받은 총련지부는 당장 관하 교육회일군과 함께 시당국에 찾아가 항의를 하였다.
Žs‹³ˆçˆÏˆõ‰ï 일군 ‚Q명이 나와 우리에게 사죄하기는 커녕 자기들은 실무적으로 사업했을뿐 s우에서 결정한것이기에 모르겠다t고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재일동포들의 처지와 민족교육의 력사적인 경위와 현상황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절대로 보조금을 페지해서는 안된다는 동포들의 목소리를 우에 보고하도록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아무리 우에 보고하여도 소용이 없을것이라고 하면서 직접 당신들이 우와 사업하는것이 좋은것이 아닌가고 우리를 돌려보내려 하였다.
우리는 자리를 떠서 Žs’·Žº로 갔다.
시장비서와 만나 사정을 말하여 시장이 당장 우리와 만나줄것을 요청하였다.시장비서는 지금 시장은 없으니 래일 전화로 알리겠다고 하였다.
다음날(2월24일) 지부사무소에 시장비서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전화내용은 이 문제는 교육위원회가 담당하고 있기때문에 교육위원회의 설명을 들어달라는 내용이였다.
지부 위원장은 어제 교육위원회 일군들과 만나 충분한 설명은 들었다,그래서 납득할수 없기 때문에 시장을 직접 만나서 요청하자는것인데 반드시 만나도록 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하였다.그러나 시당국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0분후에 교육위원회 과장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과장은 설명해 드리기 때문에 한번 다시 찾아와 달라는것이였다.
담당일군은 강한 어조로 설명은 필요 없다,우리의 응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하면서 ‹c‰ï승인날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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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전조직적,전동포적인 항의행동을 벌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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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하고의 사업이 불가능하게 되고 의회 승인 날자(3월18일)까지 3주일밖에 시간은 없었다.그러나 지부일군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막아내야 한다는 불타는 심정은 같았다.
우선 시의원들과 만나 사업하며 각 과별로 설명회를 조직하도록 구체적인 계획과 분공을 해나갔다.
그리고 이 사업을 전 기관,전 군중적인 운동으로 전개하여야 한다는 결론을 보고,5000명을 목표로 서명사업을 벌리기로 하고 또한 메르iE-mailj와 확스iFAXj를 통한 항의투쟁을 벌려나가기로 하였다.
우리들은 그날중으로 서명용지와 삐라 그리고 시의원과의 사업계획을 세워 다음날(2월25일)에 현아 다른 총련지부와 모든 기관 그리고 학교와 유치원을 통하여 학부모들에게 서명용지를 포치하고 지부관하 모든 분회에 포치하였다.
또한 그날에 조직되여 있었던 조일련대신춘모임과 조선문제를 취급하여 운동을 벌리고 있는 민간단체s코리아 21t의 모임에서 직접 호소하여,서명과 시당국에 대한 항의행동에 함께나서 줄것을 호소하였다. @ 이날 모임에는 ‘O국회의원,현의원,시의원들,고교조,일교조 일군들도 참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s동포법률쎈터t의 방조를 받아 ‘—§Žs에서 큰 역할을 논 일본사람들의 협력도 받도록 하였다.
3일동안에 만단의 투쟁태세를 갖추고 힘차게 사업을 벌려 나갔다.시 당국에 대하여 1∼2일사이에 많은 항의가 있었던 모양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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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발치는 R‹c에 Žs“–‹Ç,•¬‹à ”pŽ~를 “P‰ñAŽÓ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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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8일 아침에 시교육위원회 과장한테서 지부에 전화가 걸려왔다.그는 여러 사람들의 항의를 받았는데 한번 만나서 해결책을 찾아보자는것이였다.
지부일군은 해결책이란 페지중지밖에 없다고 말을 하니 그것도 시야에 넣고 상담하자는것이였다.
지부일군은 지금 ƒ‘ƒŽs의 조성금페지를 철회시키기 위한 서명활동을 시작했고 이 문제가 일본@각지의 재일동포들이 알게 되여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일단 ‚R월 4일에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우리들은 계속 공세를 가하도록 항의메르와 항의확스 등을 보내도록 하였으며,시역소에 함께 찾아간 분회장은 조대에 다니는 딸한테 전화하여 조대생들이 항의메르를 보내도록 부탁하기도 하였다.
‚R월2일 아침에 다시 교육위원회 과장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인사하기도 바쁘게 s이번에는 정말 저희들이 잘 못했다t고 하면서 s오늘은 사죄의 전화를 한다t고 하는것이였다.위원장이 무슨 말인가고 물었더니 많은 분들한테서 여러가지 자료와 항의문 등을 받아 하나 빠짐없이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위원회에서 심중히 토의한 결과 너무 저희들이 공부 부족이였고 너무 경솔했다고 사죄하면서 보족금의 페지는 전면적으로 철회하겠다는 것이였다.그들은 지난시기와 마찬가지로 같은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확언하였다,
지부일군은 잘 결심하였다고 하면서 실은 일본 각지에서는 조선학교의 보조금을 증액하려는 자치체들이 많고 보호자보조금외에 학교보수나 시설보조금을 내는 자치체들도 많다는것을 념두에 두도록 하였다.
시 당국자는 다음날(3월3일)에 동포학부모(3호) 집을 직접 찾아가서 사죄하고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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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대외사업을 일상적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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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를 통하여 일군들이 얻은 교훈은 지난시기 투쟁을 통하여 받아낸 민족교육의 권리가 영원한 것으로 알고 이후 사업을 잘 못해온데에서 발로시킨 문제가 아닌가 하는것이다.
시 당국자들,일본인사들과 늘 만나 사업하고 있었더라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일군들은 교훈으로 삼고 있다. 앞으로 행정과의 사업,시 의원들과의 사업을 잘 해나가자고 합의 보았다.
또한 빨리 전면철회시킬수 있었던 요인은 우리 일군들과 동포들이 시당국의 결정은 바로 민족교육을 부정하고 이것은 엄중한 민족적차별로서 절대로 용서할수 없다는 자세를 바로 세워 민감하게 달라붙어 사업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총련의 모든 기관과 동포들이 일심단결하여 떨쳐나섰기 때문에 빠른 기간에 해결할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지부일군들이 제때에 계획을 세워 준비를 갖추고 민속히 포치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이번 사업을 통하여 일심단결의 힘의 위력을 확신하게 되였다.
우리들은 3월의회가 끝나서 시당국과 만날 약속을 하고 있으며 그 자리에서 우리의 주장을 당당하게 하면서 앞으로 친선적으로 지낼수 있도록 할것이다.i2005년4월5일 송고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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